작성일 : 14-06-20 12:47
조선일보 신문(2014.6.11) '시골 野生花에서 세상살이를 배운다' 라는 제목으로 홍문택 교장신부님 글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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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시골 野生花에서 세상살이를 배운다
                                                                             
                                                                                  조선일보 2014. 6. 11. A33
        홍문택 신부 花요일아침예술학교 교장
 
 
 
"아침 깨우는 새, 밤 밝히는 반딧불전원생활서 누리는 情景 많지만 그중 으뜸은 공들여 키운 야생화
그림 그리고 싶은 충동 부추기고 폭우와 산사태, 가뭄 견뎌내면서 自立의 가치 無言으로 일깨워줘"
 
 
홍문택 신부·요일아침예술학교 교장작년 여름 어느 날 작업을 하다 망가진 연장을 고치러 의정부에 있는 공구 수리점에 들렀다. 공구를 수리하는 아저씨는 공구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설명하는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내 얼굴만 신기한 듯 쳐다보더니 아저씨, 어느 나라에서 왔수? 한국에 온 지 오래됐수? 한국말을 참 잘하네.” 시골에 와 살면서 새까맣게 탄 내 얼굴을 보고 아마 나를 외국인 노동자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울을 떠나 시골에 와서 사는 내 모습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세탁기로 빨고 훌훌 털어 말려 입으면 되는 편한 옷들을 주로 입고, 작업화를 신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이면 으레 장갑을 끼고 땡볕을 가리고자 모자를 눌러쓴 채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나의 모습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귀가한 일요일에 모처럼 서울로 장을 보러 나갔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손님 두 분이 자꾸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해가며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에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는 순간, 그분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홍 신부님 아니신가요?” “.” “지금은 어디 계시나요?” “연천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나의 설명을 듣자 그분들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신부님이면 당연히 일요일에 성당에 계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허름한 평복을 입으신 모습으로, 더구나 일요일인데 장을 보고 계신 것을 보고 혹시나 신부님 생활을 그만두신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그분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분들은 오래전 나와 같은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했다고 했다. 외진 시골에 와서 조용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골 생활을 하면서 덕을 본 것도 많다. 무엇보다 10여년간 고생했던 안구(眼球)건조증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동이 트면 예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온갖 새가 찾아와 상쾌한 아침을 만들어 주는 것, 낮이면 겁을 먹은 듯 사람의 눈치를 요리조리 살피며 줄행랑을 치는 다람쥐들을 볼 수 있는 것, 밤이면 시골다운 정경을 실감나게 해주는 반딧불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것과 크게 펼쳐진 밤하늘 화폭에 반짝거리는 별들을 실컷 볼 수 있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가끔 뜰에서 고라니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을 발견하고는 냅다 수풀로 달아나 머리를 박고 혼자 안전하다는 듯 숨지만 엉덩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어린 고라니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이렇듯 시골 학교에서 지내는 하루는 종일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다. 나는 시골에 온 덕분에 이 소중한 자연학습장을 거저 얻은 셈이다.
  
   시골에 와서 제일 공을 들인 일은 야생화(野生花) 심기였다. 학교 이름처럼 예쁜 학교를 만들자며 몇 달 동안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야생화를 심었고 정성을 다해 키웠다. 야생화들은 너무 잘 자랐고 학교 주변을 아름다운 동산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다음 해 엄청난 폭우로 산사태를 맞고 말았다. 뿌리째 뽑혀 뒤엉킨 나무들과 흙더미에 묻혀버린 교사 숙소는 너무나 참담했다. 예쁘게 잘 자랐던 야생화들도 흙더미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고 그다음 해 또다시 많은 야생화를 심었다. 새로 심은 야생화들은 해가 갈수록 잘 자라서 학교를 가득 채웠다. 찾아오는 분마다 야생화들이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학교를 만들어 주었다며 좋아했다.
 

/ 일러스트 =정인성 기자
 
   그렇게 잘 자라던 야생화에 올해 비상이 걸렸다. 몇 년 전에는 집중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던 이 지역에 이번엔 유독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곳 연천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신 동네 어르신들께서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아랫동네 개울에도 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가뭄이 더 계속돼 야생화들이 말라 죽고 행여 지난번처럼 황폐한 학교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하지만 야생화들은 기특하게도 가뭄을 버티며 잘 자랐다. 누가 물을 주거나 돌봐주지 않아도 잘 자란 것이다.
 
   사람은 기초적인 자립(自立)을 하는 데만 3년 정도가 걸린다. 먹고, 걷고, 대소변을 가릴 수 있게 되는 데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사람은 3년이 지나도 완전히 자립해서 혼자 살 수는 없다. 그 후에도 상당 기간 부모님과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야생화들은 나와 우리 학생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잔잔히 일러주는 무언(無言)의 선생님이고, 힘들 때마다 도닥거려 주는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선생님들, 기다리세요. 이 글 마치고 수업받으러 곧 나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