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7-23 10:10
조선일보 신문(2014.7.23) '철들지 못한 神父를 깨우쳐 준 만남' 이라는 제목으로 홍문택 교장신부님 글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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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八년 중복장애 앓는 딸 돌보며 힘든 내색 않던 자상한 부모와
더듬더듬 聖書 읽어 박수 치자 미소를 반짝였던 장애 소년이
격식 얽매인 채 溫氣 잃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깨달음을 준다

 
 
 
철들지 못한 神父를 깨우쳐 준 만남  
 
                                                                                                조선일보 2014. 7. 23. A29면
                                                                                                홍문택 신부 花요일아침예술학교 교장
 
 
  이윤원 세실리아는 열세 살 된 여자아이였다. 윤원이는 내가 지금 있는 곳으로 오기 전 4년 동안 사목했던 성당에서 매주일 아빠와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나의 안수를 받고 가던 아이였다. 윤원이는 열세 살이었지만 늘 침을 흘려 턱받이를 하고 다녔고, '아빠' '엄마'라는 말도 못하며, 누구와 정면으로 눈을 맞추지 못하는 심한 중복장애를 가졌다. 열세 살에 만나 4년 동안 지켜본 윤원이는 좋아진 것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4년이 지나 훌쩍 커져 더 몸을 못 가누는 윤원이를 부축하는 아빠와 엄마는 날이 갈수록 더 힘겨워하곤 했다. 내가 그 성당을 떠나던 마지막 주일에도 마지막 안수를 받고자 내 앞에 선 윤원이 아빠와 엄마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딸을 부둥켜안은 채 마당에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무척 힘겨운 상황에서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딸을 일으켜 세우는 윤원이 아빠 엄마의 온화한 미소를 가슴에 새기며 그 성당을 떠났다.
 
  금년 봄 나는 학교 후원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지방에 있는 성당으로 먼 길을 나섰다. 장시간 운전을 한지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려는 순간 누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신부님 신부님, 반갑습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쑥스러웠지만 피할 수도 없어서 인사를 드리려고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그분은 바로 4년 전 헤어진 윤원이 아빠였다. "윤원 아빠, 윤원이는 잘 지내나요?" 내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윤원이 아빠는 나지막하게 답을 주었다. "윤원이는… 신부님 떠나신 다음 해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우리는 두 손을 꼬옥 마주 잡은 채 한동안 말을 잊고 먼 곳을 응시하다가 헤어졌다. 입술을 유심히 바라보면 '아빠' '엄마'라고 부르려 애쓰고 있다고 생각되던 가여운 윤원이와 十八년 동안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상하게 딸을 지켜주었던 윤원이 아빠 엄마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는 나의 마음은 너무나 저렸다.
 
  몇 주 전 장애아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우리 학교에 와서 연수를 갖겠다며 미사와 특강을 의뢰하였다. 나는 학기 말이라 빡빡한 일정에 여유가 없었지만 먼 곳까지 찾아오겠다는 장애 아동들과 그들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걱정은 점점 커져갔다. 반응이 별로 없거나 산만할 것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집중시키고 신나는 시간이 되게 해 줄 수 있을까. 장애 아동들의 부모님에게는 어떤 위로와 격려를 해 줘야 할까. 좀처럼 묘안(妙案)이 떠오르질 않았다.
 
 
  드디어 약속한 날 아이들이 학교에 도착했다. 나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을 먼저 차분히 다스려야만 했다. 한명도 아니고 스무명이 넘는 장애 아동들… 계속 무슨 말인지 중얼거리는 아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 다운증후군, 자폐성 장애, 지적장애, 중복장애… 다양한 아이가 모여 부산을 떨고 있었다.

    나는 신나게 노래를 유도해서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며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조용한 가운데 무난히 기도를 마쳤다. 그리고 성서를 읽고 듣는 시간이 되었다. 성서를 읽으러 나온 아이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잘생긴 남자아이였다. 그런데 과연 저 아이가 성서를 잘 읽을 수 있을까? 예상대로였다. 그 아이는 불과 1분 정도면 읽을 수 있는 짧은 성서 구절(句節)을 꽤 오랜 시간 더듬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읽었다. 아니 읽어낸 것이었다.
 
  "얘들아, 이 친구 정말 잘 읽었지요? 다 같이 잘했다고 박수 쳐 주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아이는 날아갈 듯 기뻐했다. 그 아이의 세례명은 바오로였다. 바오로는 연수하는 내내 온화하고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나는 넋이 나간 듯 바오로를 계속 주시하게 되었다.
 
  나는 연수를 마칠 때 부모님들에게 고백했다. "저는 신부입니다. 저는 여러분 자녀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살며 명색이 신부인데 오늘 여러분과 지내다 보니 제가 여러분의 자녀들보다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바오로의 미소는 온화하지 못한 저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녀라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바오로가 오늘 저를 새롭게 살도록 깨우쳐 주었습니다. 바오로는 오늘 저에게 정말이지 고마운 아이였습니다."
 
  윤원이 부모와의 만남은 어려운 이웃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살아야 하는 신부(神父)의 본분을 알면서도 그 짐이 크다고 느낄 때 가끔 힘들어하는 나의 나약함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바오로와의 만남은 상대방이 내 생각을 이해해 주지 못할 때 자주 준엄한 언행을 반복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깨닫게 만들었다. '윤원아, 네 아빠 엄마 때문에 내가 철 좀 들었단다. 그리고 바오로야, 시간 되면 엄마 아빠 졸라서 자주 놀러 와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