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9-04 16:38
조선일보 신문(2014.9.3) '살아있는 偉人傳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홍문택 교장신부님 글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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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偉人傳을 만나다'
 
                                                                                                         조선일보 2014. 9. 3. A29면
                                                                                                         홍문택 신부 花요일아침예술학교 교장
 
 
가난을 실천하고 이웃을 섬기며 고통에 처한 이 앞서 보듬는 교황
衣食住 걱정이나 停年도 없이 신자들의 과분한 대접과 섬김에
익숙해져버린 司祭로서 내 삶에 '淸貧과 弱者에 헌신' 참뜻 일깨워
 
 
수건이 부족해서 일곱 식구가 물을 짜가며 한두 장으로 세수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처럼 명절 외엔 구멍난 양말이나 해져 꿰맨 양말을 신고 다녔고, 벨트가 낡아 끊어져 아버님의 넥타이로 허리를 묶고 학교에 갔던 시절이 기억난다. 그리고 자주 끼니를 걸러야 했던 어린 시절에 그런 가난과 궁핍이 우리 집만 겪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고, 대다수 어느 집이나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신부(神父)가 되겠다며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 과정 신학교에 입학했다. 오래된 학교 시설은 늘 몸을 움츠리게 할 정도로 추웠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던 학교 사정 때문에 몇 가지 밑반찬과 늘상 시래기 된장국에 달랑 밥 한 공기로 식사를 했지만 그래도 가끔 끼니를 굶던 생활은 면할 수 있었다.

1982년 20대 말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내가 속한 성당에서는 "우리 성당에서 사제가 배출된다"며 몇 달 전부터 대형 현수막이 걸렸고 성당은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 사제 서품을 받던 날은 무척 추웠다. 나와 함께 서품을 받은 신학교 동창은 10명이었다. 서울 명동성당은 축하하러 온 신자들로 빼곡히 들어찼고 성당 마당도 서품식을 지켜보러 온 신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신자들은 서품을 받고 나오는 새 사제들에게 첫 축복을 받기 위해 영하의 기온으로 얼어붙은 성당 마당에 무릎을 꿇고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새 사제가 된 나는 보잘것없는 나를 큰 인물이 된 것처럼 열렬히 환영해주는 신자들을 향해 기도해주는 첫 축복으로 사제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4박 5일, 100시간을 머물고 떠나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의 지난 사제 생활 30여년을 냉철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셨다. 가격이 50달러 정도라는 검정 플라스틱 손목시계를 차고, 아르헨티나의 조그만 구둣방에서 맞춘 구두의 풀어진 끈을 허리를 굽힌 채 묶으시고, 빛바랜 십자가를 목에 걸고, 무릎을 꿇고 축복을 청하는 수녀와 신자들을 보며 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느냐는 듯 일어나서 축복을 받으라고 손짓하시던 교황님의 모습…. 테러를 당해도 이 나이에 손해볼 게 없다며 더 많은 사람과 가깝게 만나고자 방탄차를 거절하시고,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며 한국에 머무시는 동안 그들을 가장 가까이 보듬어주신 교황. '교황(敎皇)'이라고 불리는 호칭 외엔, 꼭 필요한 것 외엔 어느 것도, 그 이상도 소유하지 않고 가난을 실천하며 이웃의 섬김을 받기보다 철저히 그들을 섬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 젊은 나이에 사제가 된 날부터 남녀노소 누구를 불문하고 그들로부터 존칭과 과분한 대접을 받아가며,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는 것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며 살지 않았던가. 인간적인 약점과 신중치 못한 판단이 분명 있었음에도 사제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신자들의 미덕(?) 때문에 나는 부족한 것이 없는 듯 착각하고 산 시간이 많지 않았나.

2012년, 정진석 추기경님이 은퇴미사 중에 이런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신부로, 주교로, 대주교로, 추기경으로 50여년을 살고 돌이켜보니 하느님의 은총 덕에 살았지만 그중 가장 큰 은총은 평생 의식주 걱정을 안 하고 살 수 있게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사제는 몇 년마다 임지를 옮겨가며 사목생활을 하지만 어디서 묵고 자야 하는지, 집 걱정을 평생 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혼자 사는 사람이고 자주 짐을 꾸려 새 임지로 떠나는 터라 방의 개수나 크기도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 얼마 되지 않는 봉급이고 상여금이나 퇴직금은 받지 못하지만 건강만 유지되면 70세 정도까지 사목을 하고 일선 사목지를 떠나도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며 생활할 수 있는 공간과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받고 살게 된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제는 정년 없이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다. 대다수 사람이 성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 의식주에 목숨을 걸다시피 힘겹게 사는 걸 생각해보면 사제가 되었기에 하느님과 교회로부터 받은 선물 중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교황'이라는 말의 라틴어 어원은 'Servus Servorum Dei'인데 그 말은 '종들의 종'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직역하자면 교황은 '교황(敎皇)'이 아니라 '교종'이라는 뜻이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철저히 가난하게 살며 낮은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며 사는 훌륭한 목자임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우리는 어릴 적에 위인전을 애독하며 인생의 꿈을 키운다. 물질만능에 젖은 사회에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진 성직자와 수도자에게 청빈(淸貧)을 요구하시고 약자에 대한 투신과 섬김을 일깨워주고 떠나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아직도 덜 성숙한 내가 정말 오랜만에 가까이서 보게 된, 위인전의 살아 있는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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