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0-15 11:28
조선일보 신문(2014.10.15) '딱지' 두 장을 책상머리에 붙여 놓고 라는 제목으로 홍문택 교장신부님 글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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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딱지’ 두장을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조선일보 2014.10.15. A36면
                                                                                                                  홍문택 신부 花요일아침예술학교 교장

 
오래전 어느 날 선배 신부님이 전화를 주셨다. "홍 신부, 자네가 길을 잘 알 것 같아 전화했는데. ○○○성당 찾아가려면 어떻게 가야지? 그 성당으로 발령이 났는데 어떤 성당인지 살짝 가보려고." 신부들은 젊은 보좌신부 시절에는 2년마다, 중견이 된 주임신부 때는 5년마다 새로운 임지로 발령을 받지만 새로 발령받은 곳이 궁금하다고 미리 찾아가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나이 지긋하신 선배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원래 소탈한 성품으로 주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배 신부에게 쑥스러울 수 있는 말을 털어놓으시는 걸 들으니 어린아이처럼 순박한 면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몇 달 후 신부들이 모여 강의를 듣고 기도하며 지내는 연수를 받으러 수련원에 가서 며칠 묵을 때였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시던 선배 신부님께서 나를 보시고 반갑게 부르셨다. "홍 신부, 그때 길을 자세히 가르쳐줘서 고마웠어. 그런데 조수석에 지도책을 펴고 홍 신부가 얘기한 대로 그 성당을 찾아갔는데 아무리 지도를 봐도 헷갈려서 신호등이 몇 번 바뀌는데도 쩔쩔매고 있었거든. 그랬더니 뒤차들이 빵빵대고 난리를 치는 거야. 그래서 차를 세우고 언성을 높이다가 다른 차 운전자와 다투게 됐지. 게다가 신호위반 딱지도 한 장 받고. 어휴 사복을 입었으니 다행이었지. 그런데 그다음 주일에 새로 부임한 나를 환영하는 미사가 있었거든. 미사를 마치고 마당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아니 얼굴을 붉히며 다툰 남자가 거기 있는 거야. 두 사람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고, 서로 쑥스러워 죽는 줄 알았지. 덕분에 굉장히 친해지긴 했어."
 
이유야 어떻든 남에게 짜증 날 원인을 제공하고 언성을 높여 다툰 데다 교통법규 위반 딱지를 뗀 경찰관에게도 버럭 화를 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는 말씀이었다. 이미 작고하신 선배 신부님의 일화가 생각난 것은 얼마 전 나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우편물을 전해주는 학교 직원이 머쓱한 표정으로 "신부님, 우편물 아래 뭐 있는데요"라며 말을 흐리는 것이었다. 그건 '딱지' 두 장이었다. 한 장은 제한속도를 12초과한 과태료 부과 통지서였고, 다른 한 장은 신호 위반으로 과태료에다 벌점 15점이라고 적힌 통지서였다.
 
다음 날 나는 두 장의 통지서를 들고 우체국 창구에 들렀다. 늘 반갑게 맞이하던 우체국 직원은 과태료 통지서를 보더니 "아니 신부님, 신부님도 교통법규를 위반하세요? 그것도 두 장씩이나"라며 화들짝 놀랐다. 나는 "국가 재정도 어려운데 한 푼이라도 더 내는 게 애국이지요"라는 궤변으로 임기응변을 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숨길 수 없었다.
 
학교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신부가 되어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운전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교통법규를 깜박 잊고 위반한 적도 있지만 알면서 위반한 적도 꽤 있는 듯싶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교통법규인데 그런 위법을 대수롭지 않은 듯 살았고, 간혹 단속하던 교통경찰관이 내가 신부란 사실을 알고 그냥 보내주었을 때는 날아갈 듯 좋아했던 기억이 부끄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신부로 살면서 성당 제대(祭臺) 위에서 쏟아냈던 강론을 뒤적여보았다.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보다 사회에 실망과 좌절을 안겨준 사건을 끄집어내어 그 잘못을 규정하고 꾸짖는 내용이 꽤나 많았던 것 같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기쁜 소식, 즉 복음(福音)을 전하기보다 남의 죄와 과오를 질타하는 말을 많이 한 신부로 살았던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2000여 년 전, 윤리적으로 규탄의 대상이 되어 돌팔매질로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인 여인 앞에 군중이 몰려들었다. 저주에 찬 시선과 야유를 던지며 때려죽이려고 돌을 쥐고 있는 시끄러운 현장 앞에 다가선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이가 있다면 저 여인을 돌로 쳐라"고 말씀하시자 나이 든 사람부터 돌을 내려놓고 돌아갔다고 성서는 기술한다.
 
나는 눈을 감고 성서에 등장하는 장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연상해보았다. 죄인으로 지목당하고 곤경에 처한 여인, 그를 둘러싸고 저 여인은 죄인이라며 돌을 쥐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먼저 떠나는 나이 든 이의 얼굴과 표정을 하나씩 그려보았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떴다. 돌을 쥐고 있다가 풀이 죽어서 자리를 먼저 떠나는 나이 든 사람 중 한 명이 예순의 나이를 먹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 장면이 기록된 성서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묵상하며 읽어 내려갔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이가 있다면."
 
그리고 다시는 내 손에 크고 작은 돌을 들지 말자고 다짐하며 책상머리 잘 보이는 곳에 '수취인 홍문택'으로 된 교통법규 위반 딱지 두 장을 단단히 붙여놓았다.